‘주의자’와 우정(友情)의 향방

2017 
본고는 1920~30년대 한국 근대소설에 재현된 ‘주의자’ 또는 지식인 사이의 ‘우정(友情)’이 어떠한 양상으로 재현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사회적 연대’의 (불)가능성을 역사적으로 반추해 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20년대 이래 식민지 조선의 지식계를 주도했던 사회주의는 ‘동지애’를 강조함으로써 ‘진정한’ 우정의 가능성을 시험했고, 이후 전향이라는 사태에 직면해 일군의 지식인들은 다시 친구와의 ‘관계’를 성찰해야 했다. 따라서 한국 근대소설에 재현된 우정을 논하는 것은 ‘공동체’가 어떠한 형태의 관계 맺음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라는, 현재에도 유효한 물음에 대한 이념적 지형을 살피는 작업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그 세를 확장했던 사회주의는 계급의식에 기초한 연대와 배제의 정치를 구사하였다. ‘적’과 맞설 투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이의 결속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당대 이론가들이 강조한 것처럼 동지들 사이의 우정은 단순한 친밀함을 넘어서는 이념적 조건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론적 요청과는 별개로, 『조선지광』 등 당대 대표적 사회주의 매체에 실린 ‘주의자’의 삶과 이념을 형상화한 소설에서 이들의 우정은 경제적 곤란 또는 이념적 취약성으로 인해 불안정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설령 진정한 동지애를 이루어 냈다고 하더라도, 그 때문에 주의자들은 부모와 가정 등 생래적인 친밀한 관계로부터는 멀어졌고, 때로는 주의자의 죽음이 진정한 우정을 담보하는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전향이라는 사태 이후 이들 주의자 그리고 지식인들은 다시금 우정의 (불)가능성을 되묻게 된다. 친구 관계가 본원적인 사회관계 중 하나인 이상, 이들은 공통적인 이념적 지반이 소실되고 새롭게 직면한 정치경제적 지형에 걸맞은 새로운 친구 관계를 고민해 보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친구와 자신 사이의 이념적, 경제적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등, 친구의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된다. 우정에 관한 철학적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우정을 ‘감정’ 혹은 ‘정서’의 문제로 간주했기 때문에 진지한 학술적 관심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덕, 공동체, 정의 등의 가치가 재평가되면서 우정의 윤리, 우정의 정치학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20~30년대 소설에 재현된 우정의 양상에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주의의 유입 및 전향이라는 이념적 지형의 변동과 함께 지식인 사이 혹은 지식인과 그 주변 사람들 사이에 어떠한 식으로 ‘친밀성의 구조 변동’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편 우정이 본질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내밀한 감정 교류라는 점에서, 감정을 ‘대상화’하기보다 ‘운동’ 혹은 ‘관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이러한 접근법은 최근 학계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감정 연구’의 한 구체적 실례로서도 의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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