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기 오영진의 영화예술론 연구

2019 
본고는 식민지 시기 중요한 영화이론가 중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오영진의 영화론에서 관찰되는 미학적 전환을 분석한다. 오영진은 전기 영화론에서 극영화를 중심에 두고, 문학과 변별되는 형식이나 기법을 중심으로 영화의 예술성을 규정지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소비에트 영화이론의 영향을 받아, 현실의 기록이라는 시각적 질료들을 창조적으로 재가공하는 인상주의의 기법이나 몽타주 등을 영화예술의 주요 형식으로 적극 수용했다. 이를 통해 오영진은 영화 역시 문학과 경합 가능한 서사 예술이라는 사실을 논증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1941년 4월에 발표한 「문화영화의 정신」이란 글에서부터, 극영화 대신 문화영화를, 형식보다는 기록성과 지표성을 영화예술의 핵심적 속성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오영진의 이러한 미학적 전회는 신체제기 “개체와 전체의 문제, 개인과 협동체의 운명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떠한 방향에서 로맨스를 발견해야 하는가”라는 파시즘 미학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이자, 동시에 영화예술을 정치에 종속시킨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속의 결과, 오영진의 전기 영화론에서 과학기술로 폄하되던 시각적 기록이라는 영화 고유의 특성은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유되었다. 특히 오영진이 보여준 기록성으로의 선회는, 해방 이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전유해 1950년대 한국 영화비평의 주요 개념이 된 ‘코리안 리얼리즘’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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