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 영정조대 30년간(1770~1799) 측우기록과 우량주척 고찰
2018
조선의 측우기는 세계사적 발명품이자 한국의 역사기상학에 분기점을 이룬 사건이다. 이 논문은 그러한 가치의 세종조 임술년 측우기(1442)의 창제와 조선 후기 영조 경인년 측우기(1770) 재건 과정을 검토하면서, 그 측우기의 제원과 크기를 통해 당시 사용된 우량 주척의 문제를 먼저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가장 앞선 연구로 중요한 와다유지(1917)의 우량기록연구 결과를 우일수, 우량표, 경정우량표 문제 중심으로 재검토하였고, 그 결과 이 우량연구가 『승정원일기』의 본문 측우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점이 적지 않음을 확인하였다. 조선후기 경인측우기로 시작된 『승정원일기』의 측우기록은 영조 46년(1770) 6.6일(음 5.13)부터 한말 순종 원년(1907) 11.23일(음10.18)까지 장장 138년간 연속된 매년월일 기록이란 역사기상학적 가치가 높은데, 『승정원일기』는 본면기상부의 측우기록항에서 그 측우기록을 수록하여 전하였다. 표제기상부는 첫줄에 사관이 판단한 그날의 개략적 기상상태기록이고 주로 ‘청음우설풍(晴陰雨雪風)’의 5대 기상현상 중심으로 표기하여 자료특성이 다르다. 본고는 『승정원일기』의 측우기록을 전면 분석하는 일환으로 측우기 기록이 처음 시작된 영조 46년(1770)부터 정조 23년(1799)까지 18세기 후반 30년간(1770~1799) 단위를 대상으로 삼아, 연간 우량과 월별 우량 및 필요시 일별 우량 상황을 상세히 고찰하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측우기록 분석방법론을 개발하였다. 연간 우일수 검토결과, 1770년대는 346일간, 80년대는 494일간, 90년대는 539일간으로 점점 더 비내린 날이 증가하였으며, 우량치 분석으로도 1770년대는 6,622㎜, 80년대는 10,764㎜, 90년대는 11,138㎜로 점점 증가하였고, 30년간 연평균 우량값은 950.8㎜로 계산되었다. 최다 우일년과 최다 우량년을 검토하여 수해가 의심되는 해로 정조 8년(1784), 정조 11년(1787), 정조 15년(1791), 정조 16년(1792)가 추산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여름철 우기인 7월과 8월의 강우 상황을 자세히 살폈다. 이들 측우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기상관측 시간대가 변경되었음을 확인하였으며, 정조 중반까지는 하루 기상의 구분 시점을 새벽 05시경 매상(昧爽)에 두고서, 주간은 ‘매상 05시~유시 19시’(14시간) 구간으로, 야간은 ‘초혼 19시~오경 05시’(10시간)로 비균등 구분하여 측우 기록하였다. 이 체계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정조 15년(1791)부터는 1일 3차 8시간 균등시간제로 개정하였고, 현대시각으로 새벽 04시경의 개동(開東) 시각을 하루 시작점으로 삼고서, 낮12시의 오초(午初)와 밤20시경의 인정(人定)을 각기 기준시각으로 적용하였음을 분석하였다. 이 개정규정이 『서운관지』 권1 「번규편」 〈측우기조〉에 수록되었다. 끝으로 영정조 30년간 중 월별 비가 많은 다우월 빈도와 추이를 조사하여, 고우량월(100 ㎜이상)은 여름형 강우특성이고, 중우량월(50~10㎜)은 봄가을형, 저우량월(10㎜이하)은 겨울형 특성임을 분석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수록된 측우 기록 방식이 누적방식과 분할방식으로 다르며, 이를 통해 시간당 강우속도 추산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추후 『승정원일기』 138년간 강우기록에 대해 전면적 분석과 다각적 복원을 통해 조선후기 뿐만 아니라 한반도 기상기후변동 해석에 참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Correction
- Cite
- Save
- Machine Reading By IdeaReader
0
References
0
Citations
NaN
KQ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