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초 일본의 변경과 통역

2016 
이 글에서는 고대 일본열도의 변경에서 전개된 이문화 간 접촉·교류 양상에 주목하여, 그 최전선에서 기능한 통역의 실태에 대해 검토하였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신라인이 열도사회를 빈번하게 왕래하기 시작하는 9세기 초에 초점을 맞추어, 이질문화의 충돌과 융합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통역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검토 결과, 쓰시마로의 신라역어(통역) 배치는 내항 사유가 불명확한 이국인 유입이 증가하고 수상한 배의 등장이 빈번하게 확인되는 가운데서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하고 내항사유를 묻기 위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박사 배치는 복수의 선박이나 대규모 집단이 내항하는 가운데서 외교문서를 소지한 사신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를 상정한 조치였음을 밝혔다. 신라역어는 구두대응을, 박사는 문서대응을 전담하였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대에는 인민의 국제이동이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일이 많은데, 문헌자료를 검토해 보면 그렇게 잘라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인민들이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 어떤 형태로든 제한, 규제, 감시, 확인을 받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다만 월경행위(越境行爲)가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곧바로 ‘이동의 적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는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사람들의 활발한 이동이 있었기 때문에 월경(越境)에 대한 통제 실태가 기록상에 남게 되고, 또 그래서 그러한 규제 실태가 보다 명확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룬 신라역어(통역)의 배치라는 입국관리강화 조치 또한 역설적이게도 쓰시마와 같은 연해·도서부에서 이루어진 역동적 교류의 결과인 동시에 그 변경에서의 자유로운 왕래를 뒷받침해 주었던 요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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