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순천의 지역정치와 6·8부정선거 규탄운동

2020 
본 논문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6·8부정선거 규탄운동의 양상과 성격을 살펴보았다. 6·8부정선거 규탄운동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성격 이 강한 민주화 운동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의 지역사 연구는 4월 혁명에 한정된 경향이 있다. 이에 본 논문은 1960년대 순천에서 이루어진 지역정치의 맥락 속에서 6·8부정선거 규탄운동을 조망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지역정치는 크게 종친회, 향우회, 동창회 등을 중심으로 선거유세와 투표기간에 작동하는 ‘지역선거정치’와 지역 의 유력자들이 야당, 사회단체, 관변단체 등에 이름을 건 ‘지역유지정치’로 이루어져있 다. 6·8부정선거 규탄운동의 지역사적 실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후자에 속한 집단이 전자를 배경으로 어떻게 국회의원 선거에 진출했는지를 규명해야한다고 본다. 순천에서 치러진 1967년 6·8총선은 지역 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조연하와 김우경이 맞붙은 선거였다. 조연하가 1960년대 순천 지역의 야당 세력을 대표하는 40대 정치인이라면, 김우경은 5·16쿠데타로 등장한 군인 출신의 30대 정치인이었다. 1950년 대 국회의원 선거가 주로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지역 유지들이 독점한 선거였다면, 1967년 6·8총선부터 지역 내 정치세력의 세대교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1967년 6·8총선은 개헌선을 확보하려는 정부와 여당으로 인해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이기도 했다. 이에 지역야당과 고등학생들은 순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6·8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 위를 벌였다. 순천 시내의 고등학생들은 1960년 4·27시위와 1965년 4·16시위를 계획 하고 주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항의식과 정치의식을 집단적으로 각성시켜 나갔다. 반 면, 순천 지역의 야당세력은 6·8부정선거 규탄운동을 계기로 지역 내 반독재 투쟁을 이끌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순천은 여순사건 트라우마를 일정정도 극복하 며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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