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공주 동불사의 아리다라부인회와 능인소년회
2019
이 글에서는 대략 13여 년 정도 존속했던 공주포교당의 아리다라부인회와 능인소년회라는 신행결사조직이 실천했던 신행과 포교, 사회적 지원활동들의 내용과 그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1910년대 이후 근대적 포교이념과 함 께 각 교구 본사들을 중심으로 포교당 설립이 진행되면서 공주 읍내에도 포 교당이 등장하게 된 것이 본 논문의 역사적 배경이다. 공주지역 유지 계층에 속하는 부인들로 구성된 아리다라부인회는 신행과 사회봉사뿐만 아니라, 특히 포교사 임명의 문제에 대해 강한 행동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식민지시기 일본 총독부의 불교정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던 당시 한국 불교계의 전반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 된다. 공주포교당 내의 또 다른 결사조직인 능인소년회에서 운영한 무료강습소 인 실달강습원의 경우에는 무산계층을 위한 사회적 활동과 겹치게 되면서 총독부의 주시를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능인소년회는 결국 자체적으로 강 습소를 폐지하게 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본사의 독단과 일제의 감시 및 한국 현대사의 이념적 대립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포교당 측의 주요 세력인 아리다라부인회는 포교사 임명의 문제로 본사(本寺)인 마곡사 측과 대립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습 을 보여준다. 두 결사 모두 지역의 포교당에서 신행과 포교, 사회적 봉사까지 지향했던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결국 시대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두 결사의 행적은 일제 강점기에 불합리한 불교제도의 압 박을 견뎌내야 했던 근대불교의 산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사에 기억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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