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斯立의 生涯와 「待人」의 次韻詩

2020 
崔斯立은 고려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간에 알려진 것 가운데에는 잘못된 것도 있으므로, 그의 생애를 다시 자세히 구성해볼 필요가 있다. 高麗文科榜目 등 고려시대 과거에 대한 몇 종의 기록을 통하여 그가 합격한 과거의 날자와 함께 과거에 합격한 사람 등이 누구 인가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과를 볼 당시의 신분, 본관, 아버지, 외가, 처가, 그리고 그의 최종 벼슬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는 東文選에 2수 전하는데, 당시 시를 지어 널리 이름을 떨쳤던 「神駒行」보다는 天壽院 혹은 天壽門에서 지은 「待人」이 후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를 받았으며 많이 읽혔을 뿐만 아니라 차운시가 다수 지어지게 되었다. 李芮는 「대인」이 천수원과 함께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썼고, 李睟光은 그 시를 당나라 韓愈의 시와 비겨 뛰어남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대의 문인들 가운데 「대인」의 차운시를 남긴 사람들과 그의 시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전하는 자료 상으로 보아 대략 30인 가량이 시를 지었지 만, 현재 전하는 것은 20인 29수 정도의 작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차운시에서 노래한 주제가 무엇이었던가를 살펴보니, 대략 歷史懷古와 人生無常,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이다. 첫째, 역사회고를 읊은 시 들에서는 천수원을 찾아 치란흥망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그 감회를 읊은 시를 살펴 보았는데, 고려의 흥망성쇠에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 많았다. 둘째, 인생무상을 노 래한 것에서는 많은 시인들이 폐허가 된 전조의 수도 앞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깊 이 느꼈음을 읊은 것이 많았다. 셋째, 여러 시인들은 객지인 개성의 천수원에서 客苦에 겨워 歸鄕을 바라는 애처로운 마음을 노래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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