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거란의 성장과 국제적 위상 :태조 · 태종시기(907~947)를 중심으로
2014
본 논문은 9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변화 양상을 통해 나타난 거란의 성장과정을 연구한 논문이다. 거란의 왕권확립과정과 태조ㆍ태종대 대외관계의 추이에 주목하여 나타난 변화요인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를 통해서 주변 세력들이 변화하는 대외양상을 통해 거란의 국제적 위상을 검토하였다. 거란 태조의 대외원정을 통해 서쪽으로는 回?路에 위치했던 세력들이 거란에 자주 조공을 바쳤다. 거란의 동쪽 또한 태조가 발해를 멸망시킨 이후에 동단국을 세우면서 발해 고토내 거란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태종은 대중원관계에 집중하여 후진의 석경당을 도운 대가로 燕雲16주를 할양받았다. 태종은 938년에 국호를 大遼로 바꿔 적극적으로 중국문물을 받아 들였고, 더불어 이원적 통치체제를 구축하였다. 태종은 석경당 사후 후진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3차례에 걸친 원정 끝에 후진을 멸망시키고, 잠시 화북 일대를 지배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태조ㆍ태종대 대내외적인 성장의 결과, 거란의 위상은 높아졌다. 특히 거란은 대중원관계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었고, 거란과 오대왕조의 주변 세력들이 점차 거란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오대왕조 뿐만 아니라 남쪽의 남당과 오월은 적극적으로 거란과의 연대를 꾀했고, 심지어 吳越은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태조ㆍ태종의 노력은 거란이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정복왕조로 나아가는 기틀이 되었다. 또한 당송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오대시대에 두 황제의 역할은 중원왕조의 패권의식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다원적 국제질서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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