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제어 수단으로서 윤리, 종교, 법에 관한 논증

2019 
어릴 적 친구들과 주먹 싸움을 벌였다면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그만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명령은 “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를 한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을 듣고 자라왔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둘러보면, 예를 들어 관공서나 경찰서 등에 “폭력 추방의 거리 선언”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하곤 한다. 아, 역시 폭력은 없어야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폭력의 그림자가 세상의 도처에서 보인다. 돈을 빼앗기 위해 협박하는 강도와 그들을 억제하려는 경찰에서부터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반정부단체와 적을 제압하려고 총을 겨누는 군대 등 세계에는 폭력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폭력이 도처에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폭력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 것일까? 애초에 폭력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폭력 비판론”을 기초로 하여 이러한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한편, 서양에서는 근대화와 함께 사회는 기능분화를 이룬 공적 영역은 정치와 과학이었고 이와 배치되는 종교는 사적인 영역에 놓이게 되었다. 정교 분리는 근대화와 세속화의 귀결일 뿐만 아니라 종교와 결합된 과도한 폭력을 억제하기 위한 지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화에 의해 폭력 전체가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 정치, 종교에서 폭력의 현상이나 형태는 분화해 갔다. 또한 사회의 기능 분화와 함께 인간의 신체 또한 분할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사상이나 마음에 내재하는 신조와 사회적 차원의 신체를 쉽게 분리할 수 없 으며, 마음의 신체적 시각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세계의 종교부흥 현상에서부터 미국의 동성애 논란과 유럽, 터키 등에서의 무슬림 여성의 베일 논쟁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다. 그리고 각각의 토론회가 때로는 폭력적 담론, 심지어 폭력 자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본고에서는 폭력의 계보를 따라가면서 분쟁과 전쟁을 포함한 우리 시대의 폭력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를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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