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발견 시기와 출토 장소에 대한 논쟁들

2018 
(이하 경교비)는 당나라때 전해진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교리와 전파과정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경교비가 발견되었을 때 당시 중국에 들어와 있던 예수회 선교사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경교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며, 연구를 진행하였다. 경교비는 발견 당시부터 그 진위문제 등 많은 논쟁이 야기되었는데 특히 경교비의 발견 시기와 출토 장소에 대한 논쟁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경교비 발견 시기는 ‘1625년 설’과 ‘1623년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1625년 설은 세메도 등 당시 경교비를 직접 보고 관찰한 예수회선교사와 이지조, 서광계 등이 주장하고 있어 그 신뢰도가 높다. 1623년 설은 일본의 구와바라 지쓰조우(上原隲藏)가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그는 디아즈의 기록과 이지조의 기록 등을 분석하여 경교비 발견 시기가 1625년 이전이라고 하였다. 경교비 출토 장소에 대해서도 장안에서 출토되었다는 ‘장안설’과 장안에서 약 150리 정도 떨어진 주질 지방에서 출토되었다는 ‘주질설’이 대립하고 있다. ‘장안설’을 지지하는 학자는 구와바라가 대표적이고, ‘주질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쁘레, 사에끼 등이다. ‘장안설’의 장점은 경교비가 300여 년 가까이 있었던 금승사의 위치가 당대 장안 대진사가 위치했던 의녕방이라는 점이다. 비의 매몰 당시 상황으로 보아 비를 옮겨 매몰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교비는 금승사에 있었고 따라서 경교비가 발견된 장소는 장안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주질설’은 경교비 발견 당시 기록들에서 경교비 발견 위치가 대체로 주질 지방으로 쓰여져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 Correction
    • Source
    • Cite
    • Save
    • Machine Reading By IdeaReader
    0
    References
    0
    Citations
    NaN
    KQ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