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城 文明商會 李禧燮과 일본 佐野美術館의 석조문화재
2019
일제강점기에 골동품을 취급하는 고미술상은 별다른 기술이 없이도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는 선호직업으로 성행하였다. 그로 인해 많은 골동품상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수없이 많은 문화재를 ‘합법적인 매매’로 포장하는 상품화 과정을 거쳐 각지로 반출하였다. 특히, 京城에서 文明商會를 운영했던 李禧燮은 조선총독부의 후원과 日本國民美術協會 산하 朝鮮工藝硏究會의 조력으로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7차례에 걸쳐 ≪朝鮮工藝展覽會≫를 개최하였고, 이를 통해 1만4천여 점 이상의 문화재를 반출하였다. 일본 시즈오카현 미시마(三島)시에 있는 사노미술관(佐野美術館)에는 현재 19 점의 한국석조문화재가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 석탑 3기, 신도비 1기, 장명등 1기, 석인상 1기 등 6점의 문화재는 이희섭의 ≪조선공예전람회≫를 통해서 반출된 것이 확실하다. 이 중에서 비의 주인공과 건립연대, 그리고 반출지가 확실한 樂善君 神道碑는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서 주목된다. 본고에서는 이들 문화재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소장되었는지 일제강점기 사업가 사노 류이치(佐野隆一)와 이희섭의 행적을 통해 추정해보았다. 사노박물관은 사노 류이치가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고향에 기증한 것을 기초로 1966년에 개관 되었다. 사노는 1925년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40년 경성에 본점을 둔 일본탄소 공업주식회사의 설립에 관여하면서부터 한국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희섭은 1930년대부터 문화재 매매와 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을 광산업에 투자 하고 있었다. 사노와 이희섭의 관계는 선후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제조사와 원재료 납품과 관련된 협력사의 관계, 또는 문화재 수집가와 판매자(중개자)의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희섭은 해방이후 문화재 매매와 광산업에서 기대했던 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6․25전쟁 중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20여 년간 반출한 문화재의 행방은 대부분 미궁에 빠져있다. 본고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최대의 문화재 반출가’ 이희섭에 의해 반출된 수많은 문화재 중 극히 일부에 대한 현황을 확인하는데 그쳤으나 관련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앞으로 많은 진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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