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인식에 대한 역사적 고찰

2018 
이 글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남 · 북한에서 단군신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식민지배이데올로기로서 일선동조론을 창안한다. 한편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일본 국체가 다른 나라의 영향 없이 유구한 존재로 형성되었다는 논리를 보증하기 위해 일선동조론을 비판하고 단군부정론을 만든다. 단군부정론은 두 가지다. 단군은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신화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주몽전설의 이본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민족사학자들은 단군부정론을 비판하며 역사적 실체로서 단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북한은 1960년대 초에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단군신화도 연구되었다. 북한은 고조선의 건국신화로 단군신화를 인식했다. 그러나 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창안하면서 북한은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으로, 고조선 건국시기를 30세기로 끌어올려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반면 남한의 강단사학계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창안한 단군부정론을 그대로 계승했다. 단군신화가 주몽설화 이본이라는 설과 묘향산의 산신 연기설화 혹은 불교의 영향설을 그대로 추종한다. 한편 ‘단군의 역사성’이란 말로도 단군부정론을 호도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민족의 침략과 일제강점기처럼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단군을 중심으로 결집하는데, 이것이 단군의 역사성이라는 것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단군신화가 국가의 위기 때마다 호명되어 전승되는 것을 ‘단군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강단사학계가 주장하는 ‘단군의 역사성’은 만들어진 단군신화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즉 ‘단군신화 전승사’를 단군의 역사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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