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탐욕과 우리 사회 ; 일제강점기 한국사회와 기업가의 탐욕: 국익 12과 사익의 경계에서

2015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기업가 한상룡의 사례를 통해 한국사회의 탐욕을 생각해 보았다.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전제로 한 식민지 사회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경유착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상룡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이라 불렸을 만큼 조선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1903년부터 1928년까지 한성은행을 경영했던 은행가였다. 한상룡은 한성은행을 토대로 약 300여개 기업(은행 포함)의 설립과 경영에 참가하였고, 조선생명보험회사나 조선신탁회사 등 새로운 분야의 회사를 한국 최초로 설립하였으며,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기업가에게 기업활동과 관련하여 자문했다. 말하자면 한상룡은 조선재계의 코디네이터였다. 일제강점기에 한상룡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명문가 출신의 해외유학파였던 점,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교술, 성실한 인간관계 등이 전제가 되었겠지만, 보다 중요한 배경으로는 일본의 조선지배에 협력하면서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긴장관계”를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탁월한 정치감각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한상룡이 제3대(1919년8월∼1927년 12월)와 제5대(1929년 8월∼1931년 6월) 조선총독을 지냈고, 제30대(1932년 5월∼1934년 7월) 일본의 내각총리를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보낸 편지는 이러한 그의 ‘탐욕’과 ‘성공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한상룡은 자신의 ‘탐욕’과 왜곡된 ‘성공방식’ 때문에 결국 오랫동안 자신의 사교무대였던 집에서조차 쫓겨나야 하는 배신감을 맛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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