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릉비문(廣開土王陵碑文)의 국어학적 연구 서설

2012 
이 글은 우리의 현존 最古금석문인 「廣開土王陵碑文」(414)에 대한 국어사적 가치의 재발견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 비문에 많은 고유명사 표기 및 한자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음운·어휘사 방면에까지 그 연구 범위를 확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것이다. 2장에서는 이 비문에 대한 필자의 해석문을 제시한다. 이는 그 동안에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에 대하여 原石系탁본들과 水谷(1959) 이후의 주요 논저들을 참조하여 가능한 한 문면에 충실한 해석안이 되도록 한 것이다. 3장에서는 이 비문에 대한 국어학적인 연구의 가능성을 示顯할 것인 바, 음운·문법·어휘 등 국어학의 전 부문에 걸쳐 이 비문이 국어사 자료로서의 충분한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첫째, 음운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에 보이는 다양한 고유명사 표기에 쓰인글자들에 대한 음운학적 분석을 통하여 5세기 초엽의 한반도 일원의 음운 상태를 재구하는 것이다. 논의 결과 가장 주목되는 점의 하나는 夫餘?韓系를 막론하고 이 비문의 고유명사 중에서 어두에서 /ㄹ/로 시작되는 예가 거의 보이지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말의 頭音法則의 연원이 매우 이른 시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과 동시에 夫餘·韓系語의 계통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을 가능성을 示唆하는 것이 될 것이다.둘째, 문법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 속의 한문 문법상 특이한 문장들을 중심으로 이두 요소의 존재 여부를 재론하는 것이다. 기존의 논의들에서도 이 비문의 맨 마지막 구절 "買人制令守墓之."에서의 종결사 용법의 ``之``字,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에서의 국어적 어순, 광개토대왕의 諡號"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國岡上大開土地平安好太王"에서의 석독 표기의 발달 가능성등 초기 이두적 사례로 지적된 바 있거니와, 이 밖에도 "過富山·山, 至鹽水上, ……", "自上祖先王以來, 墓上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 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등에 보이는 처격 용법의 ``上``字도 이두 발달의 초기 단계에 해당되는 사례로 새롭게 주목할 만한것이 아닐까 한다. 셋째, 어휘사 방면의 연구는 이 비문에 보이는 한자어들에 대하여 중국의 역대 문헌들에서의 용례 및 용법을 대조함으로써 5세기 초엽 고구려에서의 한자어 수용 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 결과 이 비문에 등장하는 한자어들은 소수의 예인 "部洛, 先迷之衍, 論事"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에서의 쓰임과 일치함으로써 당시 고구려에서의 한자어의 수용과 변용 양상이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던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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