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경기도 광주지역의 3ㆍ1운동

2020 
본고는 일제하 경기도 광주지역의 3ㆍ1운동에 대한 연구이다. 한말 이래 동학, 기독교 등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동학농민운동, 의병전쟁, 국채 보상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광주지역에서도 민족의식이 성장하였음을 논 증하였다. 이러한 민족의식의 성장을 바탕으로 광주지역에서도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었다. 기존 연구에서는 광주지역 3ㆍ1운동이 3월 26일 시 작되었다고 하였으나 본고에서는 3월 12일로 파악하였다. 이는 국사편찬 위원회 삼일운동데이터베이스의 개통에 힘입은 바 크다. 여기에서 새로 운 자료의 발굴과 이를 연구자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 련해주는 것이 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 례라 할 수 있다. 광주지역 3․1운동의 특징은 경성에서 거행된 고종의 국장에 참여하였 다가 돌아온 인물들이 주도한 경우와 기독교․천도교의 주도로 만세운동 이 전개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기독교․천도교가 주도한 만세운동은 이 른바 ‘민족대표 33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광주지역 3ㆍ1운동은 면사무소나 헌병주재소 등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관을 대상을 전개되었으며, 시위군중은 이들 장소를 습격하고 투석하는 등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였다. 이 결과 3월 26일 구천면 상일리 만세운동 때에는 헌 병의 발포로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하였고, 3월 28일에는 약 1,500명의 시위대가 광주군청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헌병과 격투를 벌인 끝에 헌병이 발표하여 사망자 6명, 부상자 10명이 발생하였다. 또한 낙생면장 남태희와 돌마면장 이준구가 자신의 집에 태극기를 높이 걸어놓고 사직 서를 제출하는 등 만세운동을 지지하였으며, 구천면장도 만세를 부르다 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는 등 면장들이 만세운동을 지지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광주지역 3ㆍ1운동은 고종의 국장에 참여했다가 귀향한 인사들과 기 독교․천도교 세력에 의해 주도 하에 시위가 폭력적으로 전개되었음을 확 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광주지역 3ㆍ1운동에는 이른바 ‘민족대표 33인’ 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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