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공론』 소재 황석우의 글쓰기

2014 
이 글은 1922년 도쿄에서 발행된 잡지 『아세아공론(亞細亞公論)』에 수록 된 황석우의 세 편의 글을 발굴하여 그 의의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대를 배경으로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라 할 조선 청년 유태경이 발간한 『아세아공론』은 ‘인류주의’와 ‘아시아의 제휴 연대’의 기치를 표방 했다. 이 잡지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인종 차별 비판의 논조가 기조를 이루었다. 또한 여기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와 아시아의 유학생 등이 필자로서 참가하여 ‘아시아제민족의 각성과 약소민족의 해방’을 실천 목표로 다양한 논의가 개진되었다. ‘일본어 조선어 중국어’가 혼재되어 일본과 조선에서 동시에 판매 유포된 이례적인 이 잡지에 황석우는 세 편의 글을 게재했다. 종래 황석우의 작가 연보에서 1922년은 작품 활동의 공백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은 황석우의 침묵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아세아공론.에 수록된 한글과 일본어로 표기된 두 편의 편지 형식의 산문과 조선의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관한 한 편의 정치 평론은 식민지 조선과 제국 일본을 왕복하는 동시대 황석우의 사상과 당시의 정황을 조명하는 단서가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새롭게 발굴된 세 편의 공간된 글을 통해 각종 사회 사상 이념 단체와 조직 등에 관계했던 당시의 황석우의 사상과 심리적 추이를 추적했다. 그결과 1922년 전후 일본에서 아나키즘과 ‘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일본 사상계의 현실과 사상가의 이면에 자리한 환멸이라는, 착종하는 또 다른 황석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로써 1922년의 글쓰기 세 편을 추가하여 작품 부재한 불모의 공간을 아나키스트 황석우의 사상과 내면의 고뇌 및 인적 네트워크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풍부하게 되살려놓았다.
    • Correction
    • Source
    • Cite
    • Save
    • Machine Reading By IdeaReader
    0
    References
    0
    Citations
    NaN
    KQ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