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ㆍ당관계의 변화와 신라의 정치사상적 대응

2015 
본 연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어낸 과정에서 보여준 외교적 사안에 대응하는 정치사상적 역량에 관한 검토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7세기는 중국에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잇달아 등장한 격동의 시기였다. 이러한 대륙의 격동에 대처한 한반도 삼국의 전략 중에서 신라의 대처 방법에는 고구려나 백제의 그것과는 다른 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필요로 할 경우 출가 수행자들에게 종교적 영역을 넘어서는 역할을 부여하였고,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들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었다는 점이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을 겪고 불교를 공인하였지만, 일단 공인된 이후 신라 왕실은 불교의 전륜성왕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게다가 원광에 의하여 열려진 불교의 보편주의적인 성격을 민족주의적인 방식으로 신라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이론적 합리화의 길은 불교를 삼국통일을 견인한 신라의 주류 정치사회사상으로 정착시키는 촉매역할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수나라 유학을 통하여 불교적 식견을 함양하고 국제적 안목을 갖춘 원광의 지적 배경이 수나라의 교학체계였고, 이러한 조건은 당에 대항하는 신라가 사상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되었던 것이었다. 7세기 동아시아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신라가 최종 승자가 된 것은 당대의 고승들에 의하여 선도되었던 신라를 호위하는 사상적 축과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신라인들의 자존의식과 자긍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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