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마한성립기 대외교류

2017 
호남지역 마한성립기 대외교류는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금강ㆍ만경강유역은 기원전 4세기 고조선계 주민의 이주로 발전된 청동기문화가 유입되고, 기원전 2세기에 준왕의 남하로 본격적인 철기문화가 유입된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하여 더 이상 대외교류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고 유적도 급격하게 감소한다. 이에 반해 영산강ㆍ서남해안지역은 기원전 3세기까지의 유적은 간헐적으로 확인되다가 기원전 2세기 이후의 유적은 급증한다. 기원전 1세기에는 중국-한반도-일본열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역로를 통한 활발한 대외교류가 이루어지며, 유적의 분포도 해상과 내륙 수로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집중된다. 섬진강ㆍ동남해안지역은 조사된 유적이 많지 않아 속단하기에 이르지만 거문도 출토 오수전을 통해 볼 때 해상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중국-한반도-일본열도를 연결하는 교역로가 남해 연안과 도서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보아 교역로 상에 위치한 섬진강ㆍ동남해안지역에서도 앞으로 많은 유적이 조사될 것으로 보인다. 호남지역 마한성립기 대외교류는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燕나라 장수 진개(秦開)의 동방경략으로 고조선 유민이 한반도에 대거 유입되는 시기로써 연대는 기원전 4세기~기원전 3세기에 해당된다. 2단계는 위만에게 패한 준왕이 금강ㆍ만경강유역으로 남하하면서 중국 연나라 철기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며 대규모 군집묘(群集墓)가 축조되고, 부장품도 철기와 유리옥 등 주로 외래계 유물이 부장된다. 연대는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에 해당된다. 3단계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과 한군현(漢郡縣)의 설치로 마한의 정치적 성장이 억제되면서 금강ㆍ만경강유역은 한군현과의 교섭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영산강ㆍ서남해안은 중국-한반도-일본열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역로를 통해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진다. 연대는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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