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石器時代의 自然環境과 文化變動 — 早ㆍ前期를 中心으로

2017 
본고는 경주 황성동267유적과 울산 세죽유적에서 신석기시대 조ㆍ전기의 상층에서 확인된 자갈층이 대 홍수에 의해서 기원전 3000년경에 형성된 것이고, 그로 인하여 전기문화는 소멸되고 중국 동북지방으 로부터 침선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어 중기문화가 시작된다고 한 필자의 이전 주장을 재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남한지역에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5800년부터 5500년 사이의 前海退期에 죽변리유적이나 오산리유적 C지구 등이 형성되어 조기문화가 시작하며, 그 뒤를 잇는 소위 飛鳳里海進期는 기원전 3000년까지 지 속되는데, 비봉리유적과 울산 황성동유적군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비봉리해진기에는 장기간의 해 진 사이사이에 짧은 해퇴가 반복적으로 6회에 걸쳐 나타나는데, 해퇴 시기에 비봉리유적의 패층과 오 산리유적의 부식질사토층이 형성되며, 이 기간의 초기에는 문암리유적이, 늦은 시기에는 경주 황성동 267유적이 형성된다. 이 이후에 퇴적된 신석기시대 전기와 중기 사이의 사력층은 해진최상승기와 후해 퇴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발생한 사퇴와 대홍수에 의해 퇴적된 것이며,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3000년 (4,40014C BP)에 해당한다. 이후에 한반도의 서북으로는 중국 요동반도계의 문화가, 동북으로는 연해 주의 편목문토기문화가 유입하여 한반도 고유한 중기문화가 형성되었다. 토기문화의 유입은 이주의 증 거이며, 이는 신석기시대 중기 사회와 문화는 요동계 연해주계 그리고 토착계의 융합으로서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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