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조(英祖朝) 집권(執權) 노론계(老論系) 문인(文人)의 자기검열(自己檢閱) 양상(樣相)에 대하여 -황경원,남유용,이천보(黃景源,南有容,李天輔)를 중심으로-

2008 
이 논문은 18세기 전반 영조 재위기에 정계와 문단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집권 노론계 문인들의 창작 성향 일면을 살핀 것이다. 이 시기 집권 노론계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황경원·남유용·이천보를 들 수 있다. 이들에게는 비록 작가 개인으로서 차별되는 문학적 지향이 있기는 하였지만, 작가 집단으로서는 일정한 범주 안에서 문학적 지향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그 문학적 지향은 이들의 정치적 입지 및 사상적 지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면모를 확인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두 가지 사안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이들이 가지고 있던 蘇軾에 대한 인식 차이이다. 소식은 문학적 성취가 있었다고 평가받았지만, 사상적 분방함으로 인해 배격받기도 하였다.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을 중시하던 문인들은 소식에 대한 배척 정도가 더욱 심했다. 소식 취향을 문제로 삼아 이들 사이에 오간 편지글은 그 실제 양상과 의미를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동시대의 작가인 조귀명에 대한 인식이다. 조귀명은 역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佛家와 仙家 취향으로 인해 주류 문인들로부터 배격을 받았다. 특히 그가 자신의 문집 서문을 여러 차례 청탁하였지만 결국 거절당하고 만 일화는 이들의 문학적 지향에 큰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사상적 지향이 문학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함께 살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두 사안을 통해 작가 집단으로서 당시 노론계 문인들이 가졌던 문학적 지향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 결론으로 사상적 지향으로는 유가적 의리를, 문학적 지향으로는 당대의 전범으로 여겨졌던 당송고문에 경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문학적 지향에 일정한 차이가 있었지만, 작가 집단으로서는 결국 작가 집단이 공유했던 공통의 가치를 중시한 결과로 보인다.
    • Correction
    • Source
    • Cite
    • Save
    • Machine Reading By IdeaReader
    0
    References
    0
    Citations
    NaN
    KQ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