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공간의 두 표상
2016
최명익의 〈심문〉에서는 국제도시 하얼빈의 중심 거리인 키타이스카야가 배제되고 있다면, 이효석의 〈합이빈〉에서는 그곳의 중심에 위치한 호텔이 전면에 배치되어 중시되고 있다. 그리고 〈심문〉에서는 명일이 여옥의 아파트를 여러 번 방문하듯이 그녀가 생활하는 공간이 반복 제시됨으로써 일상적 삶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합이빈〉에서는 유우라가 ‘나’의 호텔로 방문하기에 그녀가 생활하는 공간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일상적 삶이 배제되고 있다. 또한 〈심문〉과 〈합이빈〉에서 캬바레와 송화강 부두는 동일하게 선택되고 있지만, 이 두 공간 표상에 대한 주체의 태도는 서로 매우 다르다. 〈심문〉의 캬바레는 여옥의 처지를 반영하여 매우 초라한 공간이라면, 〈합이빈〉의 그곳은 ‘나’가 지향하는 유럽 문명처럼 화려한 공간이다. 그리고 〈심문〉의 송화강 부두는 유흥 공간이 아니라 지정학적 관심지라면, 〈합이빈〉의 그곳은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유흥 공간일 뿐이다. 그리하여 〈심문〉에서는 무욕하고 무의지적인 허무적 태도로 하얼빈 공간을 표상하면서도 그곳의 지정학적 위상과 일상적 삶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극단적 몰락 속에서도 의존적으로 갱생을 도모하는 대신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여옥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중요성을 되물어 보게 한다. 그러니까 역사적 현실을 고립된 존재로 방관하거나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 행위가 얼마나 삶을 황폐하게 하는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합이빈〉에서는 현실에 대한 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어떤 해결책도 찾으려 하지 않는 회의적 태도로 하얼빈 공간을 표상하고 있다. 그리하여 감상적으로 죽음을 중시하는 이국 여성 유우라와의 동질감을 나타내면서 유럽화된 국제도시의 미적 훼손을 안타까워한다. 이에 하얼빈의 지정학적 위상과 일상적 삶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듯이 역사적 현실은 애수란 개인적 정서를 부각시키는데 부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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