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新羅)의 문서행정(文書行政)과 인장(印章)

2020 
신라 인장은 26건 정도 되며, 용도별로 官印, 私印, 기타로 구분할 수 있다. 官印의 경우 중앙의 京官印과 지방의 外官印으로 나뉘며, 사찰에서 사용되는 僧官印도 포함된다. 私印은 1~2글자 정도의 短文 인장이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 기타로는 대구 가천동 고분군 수혈에서 출토된 인장이 殉葬印일 가능성이 있다. 인장의 연대는 삼국시대의 것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이다. 印文이 확인되는 인장은 13점이며, 문서 행정과 관련된 官印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官印은 구리 재질, 印文은 ‘之印’, 손잡이 등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서 13점의 인장 가운데 6점 정도를 官印으로 볼 수 있다. 京官印은 南宮之印, 靑幢之印 등이며, 印文은 예부나 군부대를 가리킬 개연성이 있다. 南宮이나 靑幢은 고유 명사로 사용된 셈이다. 그렇다면 苼昻之印의 苼昻 역시 실체는 불분명하나 고유명사로 간주할 수 있겠다. 外官印은 양주 대모산성에서 출토된 □玄村縣之印이다. 이 인장을 통해 지방 말단까지 문서 행정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僧官印으로는 황룡사지와 삼척 흥전리 逸名 사지에서 출토된 인장이 주목된다. 두 사찰의 격을 고려하면 僧政 관련 업무시 사용된 인장으로 볼 수 있다. 신라는 문무왕 15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장을 반급하였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문서주의를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종이에 기안된 공문서는 구두전달보다 정확하고, 인장의 날인을 통해 신뢰성을 담보 받으며, 개변을 방지할 수 있다. 한편 인장 가운데 印面에 문양을 표현한 것도 많다. 이런 인장의 용도는 명확하지 않지만, 지방 행정의 거점인 산성에서 출토 빈도가 높다. 삼척 흥전리 일명 사지에서는 문자 인장과 문양 인장 모두 출토되었다. 문서 행정에서 두 인장 모두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문양 인장의 용도는 대략 2가지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우선 封緘印의 가능성이다. 문서 내용의 신뢰와 개변 방지도 필요하지만, 외부 노출도 방지해야 했을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間印의 용도이다. 종이의 길이는 한정된다. 문서의 내용이 길어지게 되면 종이를 연접한 후 그 부위에 인장을 찍어 하나임을 표시할 필요가 있었다. 신라 인장 출토지의 대부분이 왕경과 산성이다. 왕경은 국가 행정의 중심지이고, 산성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인장은 문서 행정의 양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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