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은적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에 대한 고찰 - 신라하대 서남해안 지역의 철불 조성과 관련하여 -

2021 
해남 금강산 은적사에 봉안되어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원만한 相好와 균형잡힌 佛身의 비례, 생기 넘치는 세부표현 등에서 조형적으로 매우 뛰어난 불상이다. 비록 불신 의 하체 부분이 파손되어 나무로 보수된 상태이지만, 분할주조법으로 제작된 철불의 외 형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최대한 감춰져 있는 섬세한 주조기법은 조각 장인의 노련 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은적사 철불은 지금까지 고려시대 불상으로 알려져 왔으나, 양식적인 면에서 8세기 후반의 조각전통을 이으면서, 9세기 불상에 나타나는 여러 조형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는 점에서 볼 때, 신라하대 9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해남의 鎭山인 金剛山 소재의 은적사에 봉안되어 있으나 원래는 해남 마산면 맹진리의 바닷가에서 옮겨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해안에 위치했던 철불의 原 봉안사찰과 신라하대에 이 지역을 근거로 활동했던 해상세력과의 연관성이 상정된다. 뛰어난 주조기법과 조형성에서 볼 때, 은적사 철불은 비슷한 시기에 실상사를 비롯한 서남해안 일대의 선종사찰에서 조성된 철불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왕실이나 그에 버금갈만한 막강한 세력의 후원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세기 전반에 서남해안 지역에서 이와 같은 규모의 수준 높은 철불을 주조할 수 있는 세력으로는 청해진을 설치 하고 서남해안 일대의 무역활동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의 해양세력을 꼽을 수 있다. 그 시기 해남의 화원면에는 대규모 초기청자 窯場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생산 된 다완과 茶具들은 신라 승려들과 진골 귀족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일본 수출을 목적 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아래 서남해안 교통의 요충지 인 해남의 포구에 세워진 사찰에서 당시의 최신 도상인 ‘지권인 비로자나불상’이, 불상재 료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던 ‘쇠’로 제작되었던 것은 이 지역 불교문화의 선진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도상과 재료의 결합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화원 요장의 도자산업을 관리하 는 거점 사찰의 주존불로 봉안되었을 것이며, 철불의 제작시기는 장보고의 몰락 이전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추론은 신라하대 철불의 양식 및 도상적 특징과도 부합되는 것이므로 은적사 철불은 서남해안 지역에서 제작된 지권인 철조비로자나불상 가운데 조성시기가 가장 이른 불상이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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