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학파가 만든 '민족사'에서 우리를 만든 '한국사'로

2009 
우리들이 한국고대사탐구학회를 만들어 학술발표회를 갖고 『한국고대사탐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제시대 관학파 사학자들의 연구방법론을 계승한 후식민사학자들은 해방 후 '민족'과 '실증'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단군을 정통으로 하는 '민족사'를 발명해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의 상당 부분을 말살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단군조선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규정한 손진태는 고구려의 역사를 민족사의 영광으로 칭송하였고 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역사를 민족사의 수치로 여겼다. 이러한 민족사 서술 경향은 별다른 비판 없이 현행 국사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관학파 후식민사학자들이 실증이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조작해낸 민족사는 '한국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한국사는 민족사와는 별개로 인식되어야 한다. 관학파가 말하는 민족이란 '민족공조'와는 무관하며 사실상 '種族'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들은 nation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 우리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종족을 민족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하였다. 현대의 한국인이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한다면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성씨와 문회유산을 물려준 역사 속 국가들을 추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사는 마땅히 조선→고려→대신라→삼국시대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시작한다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ㆍ한국인의 오리진은 한국사와 단절된 고조선ㆍ고구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사가 철저히 침묵시켜왔던 내물왕 이전의 신라사에 있다. 이제부터 민족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삼국사기』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고 재구성하려는 〈모델 3〉의 세상을 활짝 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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