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반공 이데올로기 형성 연구

2016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회적 갈등요인 중의 하나는 이념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이념적 대립이 무너졌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이념적 대결에서 해방되지 못 한 채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한국 교회가 지나온 세월 동안 계속되어온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방 전 한국 교회는 독립을 위해 다양한 사회단체와의 협력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후 공산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이러한 공산주의 확산은 한국 기독교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주의 확산이 한국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확산되고 있던 공산주의와 해방 전과 해방 후에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연합을 모색하고 있었던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해서 연합해서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주의자들과의 연합전선은 갈수록 공산주의자들과의 국가건설 방법에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이러한 갈등은 공산주의자들의 정권으로부터 기독교가 억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공산주의 정권으로부터의 억압은 많은 북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월남을 가속화 시켰고, 이렇게 반공주의 의식을 가진 월남한 북한 지역 기독교인들이 남한에서 정착하고 남한에서 국가건설에 기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반공주의적 의식을 가진 북한 지역에서 월남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남한의 교회와 사회는 반공의식이 강화되었으며, 이러한 반공의식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더욱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월남한 북한 기독교인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정치적 단체인 정당을 창당하거나 청년 기독교 단체를 조직해서 그들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이러한 월남한 북한 기독교인들의 반공주의는 이승만 정권을 비롯하여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이르기까지 반공주의적 의식을 통한 정치 유착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렇게 형성된 월남한 북한지역 기독교인들의 반공주의적 의식은 한국 교회 내에 신앙적 뿌리와 같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탈 이데올로기적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도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반공주의적 의식은 대화와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현 상황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극복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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