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공재 윤두서의 예술 세계 : 해남윤씨 가문의 음악적 삶과 교유 -공재(恭齋) 윤두서를 중심으로

2012 
현재 해남윤씨 가문에 전하는 『晦暝雷霆是』, 『浪翁新譜』, 그리고 孤山遺琴과 峨洋琴 등의 여러 가지 음악사료는 이 가문의 음악연주 전통에서 생산 혹은 유통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해남윤씨 가문의 음악사료를 추적하여 공재 일가의 음악생활과 이를 통해 지향하였던 음악관 및 교유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조선 후기에 사대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琴論과 풍류방의 음악문화가 어떻게 한 가문에 수용되고 내면화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해남윤씨 가문의 음악생활은 악기 연주와 제작이라는 두 방면으로 나타났다. 『낭옹신보』와 두 대의 거문고 유물은 윤선도 이후 윤두서-윤덕희-윤준으로 이어지는 18세기까지 해남윤씨 가문에 악기를 연주하던 가풍이 그대로 남아있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악기 제작이었다. 윤두서는 국내 제작이 어려웠던 칠현금을 손수 제작하였는데, 사대부가 악기를 직접 제작하는 일이 흔치 않았던 당대의 상황에 비춰볼 때 윤두서의 악기 제작은 적극적인 유가 악론의 실천이자 尙古와 實得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해남윤씨 가문의 음악관은 궁극적으로 유가 악론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금악(今樂)을 존중하는 태도는 고루한 당대의 유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해남윤씨 가문에서 시가 창작이나 악기 제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古樂과 금악을 함께 궁구하였던 공재 일가의 확고한 음악관이 작용하였다. 한편, 근기남인의 학풍을 계승하고 있는 17-18세기의 공재 일가에서는 학맥이나 인척 관계로 형성된 교분에서 음악적 교유 양상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두서, 이서, 이만부는 모두 거문고 음악을 즐겨 탔는데, 이들이 지향하였던 음악적 교유는 합주를 목적으로 한 풍류방의 음악문화가 아니라 유가 악론을 체화시키는 개별적인 연주 양상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해남윤씨 가문에 전승되는 음악사료가 이 가문의 적층된 음악 역사이자 가풍을 드러내는 단서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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