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icon Old Web
English
Sign In

여행 · 망명 · 문학

2016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독일 시인도 드물다. 극문학의 셰익스피어, 소설문학의 톨스토이와 함께 하이네는 감상적인 서정시인으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정작 하이네가 19세기 전반기 복고시대 독일의 골수 반체제 작가이자 정치적 참여시인으로서 주류 독일문학계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는 사실, 그 대가로 죽을 때까지 반평생을 타국 땅을 떠돌았다는 사실은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논문에서는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이방인적 삶을 괴테 문학과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양가성의 측면에서 조망해 보았다. 하이네는 ‘늙은 독일’의 종말과 ‘젊은 독일’의 도래를 갈망하면서도 고전적인 독일문화가 보존되기를 바랐던 모순에 찬 예술가요 지식인이었다. 괴테 문학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가 그랬고, 공산주의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가 그랬다. 그는 구시대와 새 시대의 교체를 예견하면서도 구시대인 ‘예술시대’의 종말을 두려워했고, 복고시대의 구조적 모순에 비판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사상가가 아닌 작가로서 하이네의 한계라 하겠지만, 보수적인 주류 독일문학계 쪽에서 보면 하이네라는 인물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였다. 독일에서 하이네 문학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과 제대로 된 평가는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유럽과 독일의 문화지형도를 일거에 바꿔버린 ‘68학생운동’은 하이네 문학의 수용 문제를 독일의 과거사 청산 의지와 직결시켰다. 아데나워 시대에 하이네 문학을 홀대한 것은 서독 정부가 과거사 청산 문제에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시각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서독의 유명 출판사들은 앞 다퉈 하이네 작품집을 출간한다. 1981년 뒤셀도르프에, 이듬해인 1982년 함부르크에 연이어 하이네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그 징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Correction
    • Source
    • Cite
    • Save
    • Machine Reading By IdeaReader
    0
    References
    0
    Citations
    NaN
    KQ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