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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축조 발원자

2017 
첨성대 축조발원자로 신종원(1996)은 안홍(579~640), 장윤성‧장활식(2009)은 밀본을 지목했으며, 장활식(2016)은 안함(=안홍)의 별호가 ‘밀본’이었다고 했다. 첨성대연구는 신라밀교의 근본이었던 안함(=안홍)을 첨성대 축조발원자로 지목하였다. 안함(=안홍)은 진평왕 23년(601)부터 隋에서 비법과 진문을 학습하고, 진평왕 27년(605)에 귀국하면서 불사리, 『능가경』, 『승만경』뿐만 아니라 『금광명경』, 『관정경』 등의 밀교경전도 신라로 가져왔다고 판단된다. 진평왕47년(625)에는 唐에서 서역삼장들을 초빙해 『전단향화성광묘녀경』 역경사업을 펼쳐 덕만공주의 왕위계승을 뒷받침했다. 안함(=안홍)은 『안함기』, 『안홍기』, 『동도성립기』 등으로 칭해진 참서를 통해 신라역사를 재구성하고, 신라에 밀교를 전파하고, 미래신라를 설계하여 후대에 의해 聖人으로 평가된 김씨 진골태생의 밀교승려이었다. 본 연구는 첨성대축조 발원자가 안함(=안홍)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첫째, 선덕왕지기삼사의 제 3사 전체 내용이 안함(=안홍)의 예언에 기초한 일연의 서술로 판단되었다. 선덕여왕의 죽을 날은 부험의 영험함이 입증되는 형태로 안함(=안홍)에 의해 예언되었다고 본다. 둘째, 첨성대가 안함(=안홍)의 신라불국토설에 입각한 것임을 입증하는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발견했다. 『별기』는 안함(=안홍)의 참서인 『동도성립기』로 드러났다. 셋째, 안함(=안홍)관련기록에 ‘일연의 코드’가 존재함을 밝혔다. 황룡사의 초주였던 환희사도 역시 안함(=안홍)의 별호였다고 판단되었다. 넷째, 선덕여왕의 장례는 안함(=안홍)이 隋에서 가져왔을 『관정경』 제 6권의 탑총장으로 치러졌던 것이다. 첨성대는 선덕여왕의 묘탑이자 영혼의 도리천 상생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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