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과 일본문사의 왕세정 관련 필담

2011 
이 논문은 1763년 일본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던 이언진(1740-1766)이 일본 문사들과 나눈 필담을 분석한 것이다. 특별히 명대의 문인인 왕세정과 관련된 문답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기 전 이언진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은 시와 일본 문사와의 필담을 통해 통신사 일행 중 그의 위상은 뒤로 갈수록 돋보이게 되었다. 일본 문사들은 이언진 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여타 문인보다 그를 더 높게 평가했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필담 자료 중 이언진과 주고 받은 대화가 기록된 것은 모두 6종이 남아 있다. 구정남명의 『앙앙여향』, 오전상재의 『양호여화』, 궁뢰용문의 『동사여담』, 금정송암의 『송암필담, 내산속재의 『속재탐승초』, 남천금계의 『금계잡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대화 속에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왕세정을 둘러싼 논의가 흥미롭다. 왕 세정은 당시 조선 문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데 반해, 일본에서 그에 대한 추숭은 대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언진이 다른 조선 문인과 달리 왕세정을 높이는 뜻을 반복해서 천명하자, 일본 문사들은 그에 대해 강렬한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필담은 이언진과 일본 문사들의 왕세정에 대한 이해가 서로 층위가 다르고, 초점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이언진은 왕세정의 의고적 성향이 아닌, 공부의 스케일과 문장의 무궁한 변화를 높이 평가한 데 반해, 일본 문사들은 이반룡과 왕세정을 나란히 두어 고문사의 방면에서 이룩한 그들의 성취를 높이고 있어, 서로의 입각점이 달랐다. 본고에서는 필담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여, 이러한 차이를 확인했다. 또한 당시 한일 문사의 문학 토론의 정황과 의의를 살펴, 향후 심화된 논의의 토대를 마련코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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