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화상(畵像)의 종류와 정본 선정에 관한 고찰

2017 
본 논문은 향후 홍대용 화상의 정본을 정하기 위해 화상의 제작 과정과 전래, 현존본 상황과 특징에 대해 조사 분석한 것이다. 1766년(영조 42)에 조선 홍대용과 청 엄성은 북경에서 우연히 만나 흉금을 터고 학문과 세상사에 대해 필담을 나누며 천애지기로 삼았다. 이들은 헤어진 후각자 고향 집으로 돌아가 장문의 서찰을 주고받으며 우애를 쌓아갔다. 그러나 1년여 만에 엄성이 급작스럽게 죽으면서 생전의 교류는 중단되었지만, 이들이 남긴 진솔한 우정은 책자로 기술되어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엄성 사후에 주문조의 의해 북경 모임을 담아 『일하제금집』을 편찬되었는데, 여기에 홍대용 화상이 들어가 있다. 1766년(건륭 31) 고향으로 돌아간 엄성은 홍대용을 그리워하여 화상을 그리고 화상찬을 제했다. 엄성은 홍대용을 고결한 선비라는 뜻에서 `高士`를 화제를 삼고, 홍대용이 얼굴에 온화한 빛을 띠고 공손한 모습으로 두 손을 모아 소매 속으로 집어넣고 무릎을 구부려 마루에 대고 꿇어앉아 있는 장면을 포착해서 화상구도로 삼았다. 홍대용 화상은 병술년(1766) 엄성 원본, 정해년(1767) 모사본 계통, 경인년(1770) 재모사본 계통으로 나뉜다. 현존 홍대용 화상은 북경대학장본, 중국 국가도서관장본, 서울대학장본,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장본, 국사편찬위원회장 사진판, 북한 인민대학습당 사진판 등총 6부이다. 현존 홍대용화상은 모두 엄성 원본에서 출발했지만, 아쉽게도 나중에 거듭 모사된 것들이다. 향후 홍대용 화상의 정본을 만들 때 엄성 원본을 한번 모사한 정해년(1767) 모사본 계통의 북경대학장본과 제작년도가 가장 빠른 경인년(1770) 재모사본인 국사편찬위원회장 사진판을 기본 텍스트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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