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평양도성 논의에 대한 재검토

2021 
평양도성은 대성산성과 안학궁, 그 남쪽의 시가지를 구성한 평양전기, 그리고 장안성을 도성으로하는 평양후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평양 전기 도성에서 주요 논쟁점은 장수왕대 평양 천도 이후 왕궁성이 어디인가이다. 필자는 초기에는 청암리토성, 문자왕 이후에는 안학궁성이 후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안학궁지 동편 고분군과 서편 고분군의 성격이 다르다는 연구 성과 및 분포 방식의 차이 등을 근거로 5세기에 안학궁성이 축조되었다는 기존 견해를 견지하였다. 문헌자료로 『주서』 『수서』 『신당서』의 평양도성 관련 기사를 검토하여 대성산성과 장안성과 관련된 내용들이 각 사서에 혼재되어 있으며, “東西6里”, “隨山屈曲”, “南臨浿水”라는 표현 등은 장안성에 대한 기술임을 논증하였다. 그리고 국내도성 전통 및 정치적 경관으로서 궁성의 존재라는 관점을 통해 고구려 안학궁성의 존재를 추정하였다. 고구려본기의 장안성 축성과 이도 기사 및 각자성석 축성 시점과 과정에 대한 기록 사이의 차이를 정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몇가지 전제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양원왕 이후 고구려 국내 정치세력의 공간적 기반에 의하여 장안성 천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시론적으로 모색하였다. 양원왕 즉위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우세를 잡은 추군세력은 평양계 정치세력으로서 서평양 일대를 거주 기반으로 삼은 세력이었으며, 서평양에 위치한 장안성의 축성 및 이도의 배경에는 평양계 정치세력들의 공간 기반과 결합하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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