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자혜의원 나환자정책의 성격

2011 
본고는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립된 과정, 운영의 실상, 의원의 확장과 그에 따른 주민의 투쟁에 대해서 살펴본 글이다. 조선총독부는 1916년 2월 전남 고흥군 금산면 소록도에 자혜의원을 세우기로 하여 소록도 서편에 약 30만평과 민가 10동을 매수하였다. 동년 7월 초대 원장으로 아리가와를 임명하면서 착공하여 다음해 1월 본관 외에 47동의 건물을 준공하였다. 정원을 100명으로 하여 1917년 4월부터 각도에서 보내온 환자를 수용하였다. 초창기 소록도 자혜의원은 환자에게 식민지 의료와 일본식 생활양식을 강제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적 체면을 내세우기 위한 나환자 요양소의 성격으로 설치되었다. 1920년대 초에 하나이가 제2대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재임 중 3회에 걸쳐 병원을 확장하였다. 동시에 네 번에 걸쳐 정원을 증원하였다. 환자의 진료는 병원에 수용된 입원 나환자와 외래환자를 별도로 취급하여 시행하였다. 입원환자의 하루 일과는 군대와 같이 통일적으로 움직였다. 경증환자에 대하여는 체력에 맞는 작업을 부과하여 심신의 전환과 정신적 위안을 도모하고 체력의 증진을 기대하였다. 수용 환자는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 출신이 각각 절반에 가까운 인원수 였으며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 사람들이었다. 어느 정도 치유되어 퇴원한 비율은 9%에 지나지 않았고 20% 정도는 사망 등 불의의 사태를 당하였다. 나머지 70%는 불안 속에서 장기간의 수용생활을 계속하는 처지였다. 전국의 나환자 수는 3만 명 내외로 추산되어 수용시설의 확충을 요구하는 사회의 여론에 따라 총독부는 1925년부터 병원 확장계획을 세웠다. 1926년 9월 부지매입에 관한 주민 설득에 대해 주민들은 생활 근거지의 상실을 이유로 거부하였다. 주민들은 반대 항의 시위를 하다가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하였다. 당국은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한편 주민들을 강압하여 부지 매입을 마무리하였다. 병원의 확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저항은 무위로 끝나고 총독부의 의도대로 남병사가 신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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