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의 皇帝와 黃帝의 역사화 연구

2020 
黃帝에 대한 기존 연구는 신화의 역사화로 보느냐, 역사의 신화화로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한국과 서양학계는 전자를 지지하고, 중 국학계는 후자를 지지한다. 특히, 중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고고유적과 문헌자료 를 결합하여 黃帝가 신석기 시대 실존 인물임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黃帝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상서 을 중심으로, 초기 黃帝는 서주 초기 초나라를 정벌한 서주 왕을 모델로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상서는 춘 추 말기 초간본이 만들어진 후 소실과 복원을 반복하여 진위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은 주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국가공문서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춘 추전국 교체기에 제작된 어정비 명문의 내용과 비교한 결과 의 皇帝 기록은 신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는 黃帝가 아니라 皇帝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초기 黃帝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제왕을 의미하였음을 말한다. 주 목왕은 아버 지인 소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정을 기획하고,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속형인 여 형을 선포한다. 은 목왕이 여형을 선포하면서 한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선대 왕의 유훈임을 전제로 皇帝가 치우와 묘민을 멸절시킨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따라서 의 皇帝는 목왕 이전의 왕으로, “皇帝가 묘민을 정벌하였다”는 이야 기는 서주 초기 성왕과 소왕이 남정을 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黃帝 숭배가 강화되면서 ‘皇帝와 치우의 전쟁’은 ‘黃帝와 치우의 전쟁’ 으로 변형되고, 사마천에 의해 黃帝는 모든 제왕의 시조가 되었다. 黃帝는 역사의 신화화, 다시 신화의 역사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따라서 黃帝는 역사가 신화 화한 결과이며,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은 서주 초기(B.C.11세기∼B.C.10세)다. 이는 중국학계가 주장하는 신석기 시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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