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 Figuration of Ssangseokbul (Two Rock-carved Standing Buddhas) in Yongmi-ri from the Joseon Dynasty

2019 
경기도 고양과 파주를 잇는 혜음령 옛길, 장지산 자락에는 2기의 석불 입상이 있다. 이 글은 용미리 양위 석불을 대상으로 한 조선시대 시들을 조명하여, 거기 내재된 시선과 인식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석불의 문화사적 위상을 밝힌 것이다. 쌍석불은 석가불과 미륵불로, 1471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세조의 명복을 빌고 성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조성한 것이다. 기록상 조성 당시 쌍석불은 세간의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는 정희왕후·한명회·연산군이 휘두른 절대 권력의 금기 외에도, 당시 일반 사대부 지식인의 불교에 대한 혐의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무관심은 16세기에도 이어졌다. 16세기 들어, 쌍석불은 혜음령 길을 오간 명나라 사신들의 눈에 매우 인상적으로 비치었다. 그들은 이 장대한 석상을 석장군(石將軍)으로 불렀다. 이는 명나라 사신을 안내한 조선의 접반사들이 쌍석불의 정체에 대해 무지했거나 무관심했음을 시사한다. 이 석상은 17세기 이후 쌍석불이나 쌍미륵(雙彌勒)으로 일컬어졌는데, 석장군 호칭도 여전히 존속했다. 남성 사대부들의 한시(漢詩) 속에 그려진 쌍석불은,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노표(路標)나 장승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쌍석불의 조성 배경으로는, 15세기 후반의 불교문화 및 정치상황 외에 당시 입석(立石) 문화의 양상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함께 고려해야 쌍석불의 위치와 형태, 나아가 문화적 기능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용미리 쌍석불은 15,6세기 한국 입석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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