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북한의 정선(鄭敾)에 관한 인식

2021 
이 글에서는 1950-60년대 북한의 문예 정책 속에서 정선(鄭敾, 1676-1759)에 관한 인식이 변화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북한에서 정선은 1950년대 전반부터 탁월한 사실주의 풍경화가로 규정되면서 그의 위상과 회화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까지 민족미술의 특질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각종 매체의 지면에 정선의 작품이 민족의 보물로 소개되었다. 정선의 생애정보에 맞춘 기념행사는 1950-60년대에 3차례 치러졌으며, 그중에서 1956년과 1959년에는 전람회도 개최되었다. 그러나 정선에 관한 북한의 인식은 초기에 부여받았던 높은 위상으로 고정되었던 것이 아니라, 시기와 문예 정책에 따라 달라지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평가가 낮아지기도 했다. 김홍도가 인민의 낙천성을 표현한 사실주의 인물화의 대가로서 시종일관 그 가치가 변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정선은 비교적 짧은 기간 위상이 높았던 화가였다. 이러한 현상은 남ㆍ북종화풍을 절충한 독창적 필법과 적묵의 효과가 특색인 정선 화풍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선의 화풍은 1950년대 후반 서정적인 풍경화의 허용과 함께, 자유로운 표현과 예술적 기교가 인정되었던 스탈린 사후 ‘미학적 해빙기’에 일시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1950-60년대 북한의 정선 관련 문헌들을 살펴보면, 문예계 정책에 따른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 되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학계에서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정선을 주목하기 시작했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 연구에서 살펴본 북한의 정선 관련 문헌들이 지닌 미술사적 의의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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