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東宮의 변화와 臨海殿의 성격

2017 
본 논고는 신라 동궁의 성격과 그 변화, 임해전의 설치 시기와 위치, 그 성격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문무왕 19년(679) 이전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삼국의 동궁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신라에서 679년에 東宮을 처음으로 건립하였고, 752년(경덕왕 11)에 東宮衙와 東宮官을 설치하였다. 752년 이전까지 동궁은 大宮, 즉 正宮의 동쪽에 위치한 離宮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경덕왕이 태자제도의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강력한 왕권의 확립을 도모하려는 의도에서 752년에 동궁아-어룡성-세택을 중심으로 하는 동궁기구를 새롭게 정비하고, 예전에 內省에서 관리하던 월지전 등의 여러 관청을 동궁관에 소속케 하였다. 이에 따라 동궁은 제도적으로 태자의 공간임을 보장받게 되었고, 9세기 후반 경문왕대에 태자 관련 제도가 한층 더 체계화·조직화되면서 동궁은 태자의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말기까지 東宮은 思正堂과 隅宮같은 태자가 정무를 보거나 거처하는 공간과 국왕이 연회를 개최한 臨海殿등을 포괄하고 있는 공간이 병존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공간이라는 측면이 완전히 불식되지 않았다. 679년(문무왕 19) 무렵에 월지(안압지) 서편에 건립한 臨海殿의 정문이 臨海門이었다는 점, 大明宮麟德殿의 건물구조와 임해전의 건물 배치가 유사한 점 등을 두루 고려하건대, 臨海殿址에 남북으로 배치된 세 개의 건물을 모두 망라하여 臨海殿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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