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제강점기 부여 홍산면에서 거행되었던 괘불기우재(掛佛祈雨齋)와 규암나루초파일 관등놀이를 중심으로 충남지역 불교민속의 전승양상과 성격을 추적한 논문이다. 본연구를 위해 먼저 불교민속의 전승 배경이 되는 각 지역의 전통사찰을 주목하였다. 그 가운데 부여지역에서는 만수산 천년고찰 무량사가 그 선구적인 위치에 놓여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30년대 거행된 홍산의 기우제는 민ㆍ관ㆍ사찰이 공동으로 베푼 유교식 기우제와 무량사의 불교식 괘불기우재(掛佛祈雨齋)가 혼합된 독특한 의례였다. 당시 “100년 만에 무량사괘불이 나들이를 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홍산의 기우제는 조선후기 홍산관아에서 주관했던 읍치기우제(邑治祈雨祭)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와 연계하여 홍산에서는 가뭄극복을 위해 오일장을 임시로 옮기고 비를 기원하는 ‘사시기우(徙市祈雨)’의 관행도 포착된다. 규암나루 관등놀이는 부처님 탄신일에 집집마다 연등을 걸고 축원하는 조선시대의 사월초파일 세시풍속을 대동놀이로 승화시킨 불교민속이다. 그러나 비록 불교적인 속성을 차용했음에도 규암나루 관등놀이는 종교적인 성격보다 지역축제로 기능했다. 그런가 하면 불교민속의 관점에서 석가모니에 대한 등공양(燈供養)의 의미 및 수륙재(水陸齋)의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이처럼 민간에서 대규모의 행사가 가능했던 것은 나루와 장시의 부흥을 도모하려는 시장상인들과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연기군 조치원읍 봉산리(현 세종시) 산신암의 김향란 무계입문과 굿을 소재로 다루었다. 첫째 장에서는 김향란의 기구한 삶과 무당이 된 과정, 무속 계보 등을 다루었다. 그리고 둘째 장에서는 김향란이 선대 스승으로부터 익힌 주당풀이를 기록하였다. 주당풀이는 여러 유형이 있으나 이 글에서 다룬 것은 산소 터를 잘못 건드려 주당을 맞은, 이를테면 산소주당에 의한 환자 굿을 조사 정리하였다. 본문에서는 주당풀이의 진행과정을 김향란의 연행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옮겨 놓았다. 아울러 여러 무구나 표현, 행위 등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가하기도 하였고, 보충조사를 통하여 행위에 담긴 의미나 방식을 적어두었다.